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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댈 것인가?<현대음악앙상블‘소리’ 2022 기획연주회: Born in 1940’s>

  • 작성자 사진: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2022년 6월 11일
  • 2분 분량

클래식평론가 1기 정혜수


5월 24일, 예술의 전당에서 현대음악앙상블‘소리’의 <Born in 1940’s> 연주가 펼쳐졌다. 현대음악을 추구해온 그들에 맞게, 이번 연주는 1940년대에 태어난 작곡가들의 곡으로 구성됐다. 뮈라이(T. Murail, 1947-), 아페르기스(G. Aperghis, 1945-), 그리제이(G. Grisey, 1946-1998), 젠킨스(K. Jenkins, 1944-), 샤리노(S. Sciarrino, 1947-), 그리고 이만방(李萬芳, 1945-)이 그 주인공이다.


연주는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어려운 박자와 난해한 주법이 난무하는 현대음악은 자칫하면 지저분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앙상블‘소리’는 현대음악의 연주에 있어 이미 전문가였다. 포르티시모(ff)의 강렬한 압력을 가하는 주법부터 피아니시모(pp)로 연주되는 바람 소리의 소음성 주법 묘사까지, 넓은 셈여림 범위에서 구현되는 모든 현대 주법이 2층 끝자락까지 전해졌다. 이는 그들이 울림의 조절에 이미 탁월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서로가 서로의 울림을 들으며 각자의 소리를 밸런스에 맞게 적절히 섞어나가는 모습은 곡에 대한 그들의 이해도를 짐작하게 했다.

프로그램의 의도 역시 확실했다. 그들은 프로그램북에서 “1940년대의 전반은 전쟁이 대단원으로 치달아 인간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었고 후반은 전쟁 후 폐허 속에서 생존과 재건을 위해 처절히 투쟁해야 했다.”라 밝혔다. 마치 오늘날의 러시아-우크라 간 전쟁을 시사하는 듯,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의적 주제로 묶기 위해 과거 전쟁이 활발했던 연도인 1940년대에 태어난 작곡가들을 데려온 게다.


그러나 연주가 의도에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과연 우리는 작곡가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 시대의 ‘영향을 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의 곡은 모두 제각기 다른 스타일을 띤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다양함의 원천이 “그들이 경험한 응축된 고통”이며, 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어 우리 시대 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바탕”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이 타 환경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나이는 약 7세부터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7세 이후 구체적 조작기에 도달해서야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주위의 환경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속 작곡가 중 가장 일찍 태어난 젠킨스를 기준으로 해도, 그들이 외부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시기는 1950년대인 셈이다.

지평을 처음 외쳤던 가다머는 “이해”를 전제로 이를 내세웠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석이 가능하고, 다양한 해석이 모여 지평이 넓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차라리 전쟁 후 급격한 사상의 분화, 회복을 위한 노동착취, 인권운동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예술을 포함한 모든 의식의 표현 수단은 현시대의 문화에 대한 표현가들의 인식을 온전히 드러내어야 한다. 각자의 방법으로 현재의 아픔을 담아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생생히 체험하도록 하고, 부정이 긍정으로 도약할 수 있게 하는 단초를 제공해야 한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의 한국을 살아간 예술가들이 그 시대의 아픔을 기록해두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전쟁이 반인본주의적인 수단임을 인지하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앙상블 ‘소리’의 기획의도에는 찬사를 보낸다. 허나 마땅한 연결고리 없이 그저 시의에 기대어서는 오래도록 기억될 수 없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이끌려 대중이 모이더라도, 그들의 의식에서는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순간에 그칠 것인가 기억에 남을 것인가. 선택도, 그에 따른 책임도 결국 자신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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