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교향악축제 대전시립교향악단
-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6일 전
- 2분 분량

빛과 음악이 만난 무대, 쇼스타코비치 ‘피의 일요일’의 새로운 연출
지휘 여자경, 바이올린 백주영
2025년 교향악축제의 주제인 ‘The New Beginning’ 아래, 4월 12일 무대에 오른 대전시립교향악단은 신선한 구성으로 청중을 맞이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과 올해로 서거 50주년을 맞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 g단조 Op.103 “1905년”>을 선택하여, 전혀 다른 시대와 성격의 두 작품을 통해 고전과 현대,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의 대비를 시도했다.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은 시각적 연출을 결합하여 표제음악의 확장 가능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에서는 솔로 바이올린 트릴 부분에 목관의 주제가 아름다움을 감소시키게 만들어 아쉬움을 주었고, 2악장 2변주에 바순의 주제 선율은 솔로 바이올린과의 앙상블 면에서 밸런스를 깨트렸다. 백주영은 클라이슬러의 카덴차를 선택하여 다성적 구조와 화성적 흐름을 강조했지만, 연주에서는 중저음부가 상대적으로 부각되며 선율의 균형감이 다소 흐트러졌다. 고음에서의 선율이 더 또렷하게 살아났다면, 카덴차의 의도와 연주 해석 간의 조화가 더 완성도 있게 느껴졌을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협연을 이어갔으나, 관악기의 짧은 호흡과 악기별 이중주에서의 음색 불균형으로 인해 음향적 통일감이 부족했고, 빠른 패시지에서는 박자와 음정의 미세한 흔들림도 있었다. 그러나 백주영이 앵콜곡으로 연주한 파가니니 <카프리스 제21번>은 안정감 있는 보잉을 통해 섬세한 표현력과 원숙한 기량을 보여주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은 1905년 1월 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피의 일요일’ 학살 사건을 주제로 한다. 당시 제정 러시아 군은 궁정으로 향하던 노동자와 시민들을 무차별 발포로 진압했고, 이는 1905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사건을 다루며 여러 러시아 민중가요를 인용하여 민중의 비극과 분노, 저항의 감정을 음악적으로 구조화했다. 지휘자 여자경은 이 작품을 단순히 소리로 구현하기보다, 조명과 영상 연출을 활용하여 표제음악의 장면성을 극대화했다. ‘궁전 앞 광장’, ‘1월 9일’, ‘추도’, ‘경종’ 등 각 악장에 따라 무대 전면 스크린에는 흑백으로 된 당시 역사 사진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조명은 악장의 분위기와 전개에 맞춰 섬세하게 조절하였다. 이로써 관객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시각적 효과를 통해 서사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1악장 도입부에서 트럼펫 음정은 다소 불안정하게 시작했으며, 플루트 이중주 하모니의 음색 조화가 어긋나는 구간도 있었다. 바이올린은 활의 아랫부분을 사용하여 포르테를 표현할 땐 힘이 들어가 탁한 소리를 내는 등 긴장감이 엿보였다. 그러나 2악장에서는 스네어 드럼 반주에 현악기 파트가 활을 내려놓고 지휘자에게 집중하여 피치카토로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전체가 안정감을 되찾았고, 3악장에서는 비올라가 중심이 되어 절제된 애도로 추도의 정서를 전해줬다. 다만 다이내믹한 표현이 다소 부족하여 감정 곡선이 평면적으로 들리는 부분도 있었다. 4악장에서는 약음기를 빼고 연주하며 시민들의 결의찬 모습을 강력한 음악으로 표현하였지만, 활이 지나치게 눌려 쇳소리에 가까운 음색으로 들렸고, 잉글리시 호른의 솔로에서는 호흡이 매끄럽지 못하여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살짝 졸이게 하였다. 한편 여자경은 조명 연출을 통하여 관객들의 몰입감을 강화했지만, 무대 조도의 저하로 인해 오케스트라는 LED 보면대 조명을 사용해야 했다. 이 조명이 관객석으로 반사되면서 눈부심이 발생한 것은 향후 연출형 공연에서 더욱 세심하게 고민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출이 시각적인 효과를 넘어 음악의 감정선을 함께 전달한 점은 미학적 성과로도 생각된다.
한 시간 정도의 어둡고 암울한 음악과 달리, 앵콜곡으로 연주된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은 연주회를 부드럽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했다. 지휘자 역시 왈츠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췄고, 듣는 사람의 어깨도 들썩이게 하는 선곡이었다.
이번 대전시향의 무대는 단순히 연주에 머물지 않고, 표제음악이 지닌 서사와 감정을 시청각적으로 해석하고 전달하려는 시도로 의미를 가진다. 지휘자 여자경은 음악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풀어내며 관객과의 감정적 교감을 시도했고, 이는 표제음악이 나아갈 수 있는 현대적 방향성을 제시했다. 감각과 해석, 스토리와 연주의 유기적 결합은 기존의 청각 중심 감상을 넘어 확장된 음악 감상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교향악축제 무대의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었다. 여자경과 대전시향이 앞으로도 시도할 연출적 해석과 음악적 도전이 더욱 기대된다.

글 이종선(클래식음악평론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