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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교향악축제 서울시립교향악단

  • 작성자 사진: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7일 전
  • 4분 분량


공생의 시작, 때때로 이탈된 집중력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서울시립교향악단

     

지난 4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이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 참여해 최수열의 지휘로 무대에 올랐다.

    

슈만 <첼로 협주곡>

첫 곡은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의 협연으로 연주된 슈만 <첼로 협주곡>이었다. 기술적 아쉬움은 있었지만, 감정의 흐름을 정교하게 주고받는 방식은 단순한 협연을 넘어선 상호작용의 깊이를 드러냈다. 이번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협연자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관계 설정 방식이었다. 두 주체는 정면으로 맞붙기보다, 각자의 영역을 확보한 채 서로의 흐름을 읽고 반응하며 연주를 이어갔다. 특히 프레이즈 말미에 비올라와 호른이 첼로의 흐름에 맞춰 다이내믹과 음색을 조정하며, 실내악적일 만큼 세부적인 교감이 이루어졌다.

     

-협연자와 오케스트라의 공생관계

이상 엔더스는 여러 구간에서 선율의 흐름을 유연하게 이어가며 음의 운율성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2악장 도입부에서는 현악기들이 잔잔한 피치카토로 배경을 만들고, 첼로 수석은 아르코로 전환해 연주를 이어갔다. 그는 단순한 반주를 넘어, 협연자와 감정을 공유하며 흐름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했다. 소리를 부각시키되 협연자의 선율을 넘지 않아, 음량의 균형도 섬세하게 유지하여 협연자의 표현 역시 더욱 설득력 있게 살아났다. 이 외에도 협연자와 오케스트라는 여러 프레이즈의 끝 셈여림을 함께 맞추며 실내악적인 결을 연주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진행했다. 오케스트라가 전면에 나서기보다 협연자의 해석을 뒷받침하며 조율한 결과, 연주는 공생의 구조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

     

-음악가가 청중을 설득하기 위한 또 다른 조건

해석의 개연성에 비해 협연자의 기술적 완성도는 때때로 미흡했다. 1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짧은 서주 뒤에 첼로가 주선율을 이끌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상 엔더스는 첫 프레이즈를 말하듯 연주하며, 슈만의 내면적 정서를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몇몇 지점에서는 곡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프레이즈 전개 과정에서 몇 차례 불안정한 음정이 드러났고, 이는 빠르게 연결되는 음형 속에서 셈여림, 활의 각도, 팔의 무게가 순간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였다. 해석의 방향성은 분명했지만,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더 정밀한 조율이 필요했다. 물론 이러한 기술적 문제는 곡이 진행되며 점차 개선됐지만, 연주 과정에서 팔의 무게가 과도하게 실려 공명감이 부분에 대해선, 소리가 공간 깊숙이 전달되지 않으니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었다.


서울시향의 연주 역시 기술적인 아쉬움을 남겼다. 이 곡에서 오케스트라는 포르테에서도 긴장감을 유발하기보다는, 멜로디 전환점에 머물며 밀도를 압축해 전달해야 한다. 가령 첼로가 주제 선율을 제시한 뒤, 리듬이 분절되며 전개의 전환점으로 향하던 지점에서 트럼펫 솔로가 전면에 과도하게 드러나 곡의 흐름에서 일시적으로 돌출되었고, 이로 인해 첼로 솔로와의 거리감이 생겼다. 톤을 더 응축해 중심을 유지했다면, 첼로와 오케스트라 간의 유기적인 흐름이 한층 더 설득력 있게 형성됐을 것이다.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현장,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사진=이강원)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

인터미션 이후, 서울시향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를 오리지널 엔딩 버전으로 연주했다. 일반적으로 종결부는 장엄하게 마무리되지만, 오리지널 버전은 영웅의 퇴장을 내면의 고요함 속에 정리한다. 최수열은 ‘영웅의 업적’과 ‘영웅의 은퇴와 성취’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조용한 종결부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

     

-구간별 비평

1부 ‘영웅’의 도입부에서 호른은 다소 불안정하고 날카로운 톤으로 연주되어, 오케스트라와 음색이 매끄럽게 융합되진 않았다. 그러나 곡이 전개되면서 점차 안정감을 찾았고, 후반부에서는 영웅을 형상화하는 장중한 음향과 규모감에 맞춰 효과적인 전개를 이뤄냈다. 장중한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구간에서 제1, 2바이올린은 다운보잉으로 프레이즈를 분할했고, 제2바이올린은 업보잉을 사용해 고조된 분위기를 표현했다. 이러한 보잉의 통일성은 단순한 주법 선택을 넘어, 긴장과 이완의 호흡을 구조적으로 조율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대목이었다. 다만 1부를 마무리하는 투티에서는 활의 속도와 팔의 무게 조절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지며, 날카롭게 튀는 음형이 포착됐다. 연주 전반에 이처럼 집중력이 일시적으로 이탈한 순간들이 간헐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2부 ‘영웅의 적들’은 목관악기를 활용한 불협으로 시작된다. 슈트라우스가 이 대목을 통해 풍자한 ‘비평가들’의 이미지를, 최수열은 목관을 날카롭게 몰아붙이기보다 불협과 산만한 리듬을 강조해 혼란과 모호함이 뒤섞이도록 표현했다.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기보다는 상황에서 비롯된 혼란스러운 인상을 부각하는 방식이었다. 이어진 현악기 연주에서는 공명감이 더해지며 영웅의 내면적 갈등이 서서히 고조됐지만, 연결부에서 음정이 흔들렸고, 진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선 활의 각도가 넓어지며 음색 밀도가 과도하게 높아져, 음이 다소 거칠게 표출되는 구간도 있었다.


3부 ‘영웅의 반려자’에서는 악장 웨인 린이 바이올린 솔로로 이목을 끌었다. 활의 테크닉에서 몇 차례 아쉬움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반려자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프레이즈의 끝음을 길게 처리하거나, 음 사이에 간격을 두며 상대를 의식해 감정을 조절하는 반려자의 모습을 그려냈다. 한편 바이올린 솔로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연주된 하프의 아르페지오는 공명감이 부족했고, 진성 위주로 처리되며 영웅과 반려자의 관계가 결실로 이어지는 정서적 배경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형상화하지는 못했다.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현장, 바이올리니스트 웨인 린(사진=이강원)


4부 ‘전쟁터의 영웅’에서는 백스테이지에서 연주된 트럼펫이 배경을 전환하는 장치로 작용해야 했지만, 집중력을 잃어 첫 번째 연주의 마무리 음정이 불안하게 흐트러졌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제2바이올린이 앞선 구간과 마찬가지로 업보잉을 사용해, 고조되는 분위기 안에서 보잉의 통일성이 다시 드러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본격적인 전투 장면에서는 전체 악기군이 리듬을 펼쳐내며 상황을 묘사하는 가운데, 트롬본을 포함한 금관은 리듬을 짧게 조여 긴박한 전투 상황을 더욱 압축된 밀도로 형상화했다. 리듬의 확장과 수축이 병렬적으로 교차되며, 혼란 속에서도 구조적 긴장을 유지하려는 지휘자의 의도가 드러났다. 음향의 색채는 밝은 편이었고, 이로 인해 소리가 과도하게 팽창되며 전투 장면 특유의 어둡고 위협적인 정서는 다소 희미해졌다.


5부 ‘영웅의 업적’에서는 하프가 잔향의 깊이를 충분히 확보하며 연주돼, ‘영웅의 반려자’에서와는 다른 면모를 드러내고 곡의 밀도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하프 연주를 사이에 두고, 직전에 이어진 현악기는 음형의 상하행 폭을 좁게 설정해 절제된 흐름을 형성했으며, 오보에는 음량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않아 솔리스틱한 존재감이 희미하게 처리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슈트라우스가 여러 교향시의 주제를 통해 예술적 성취를 환기하고자 했던 이 구간은 선명하게 드러나기보다, 비교적 조용하고 절제된 채로 마무리됐다.


6부 ‘영웅의 은퇴와 성취’에서는 잉글리시 호른이 프레이즈를 길게 이어갔으나, 아티큘레이션이 분명하지 않아 다소 흐릿하게 처리됐다. 호른 역시 음량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잉글리시 호른과 마찬가지로 아티큘레이션이 또렷이 또렷하지 않아 전반적으로 목가적인 풍경을 효과적으로 형성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5부의 절제된 어조와도 일정 부분 연결되며, 회고와 절제의 정서가 후반부 전개를 지배하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이 해석은 오리지널 버전의 결말과도 맞물린다. 호른과 악장이 연주한 솔로 바이올린이 조용한 대화를 끝으로 마무리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호른의 음색이 일시적으로 불안정했지만, 바이올린과 섬세하게 음형을 주고받으며 감정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곡의 종결부에서 모든 음이 사라진 뒤에도 웨인 린은 활털로 현을 미세하게 두드리며 마지막까지 여운을 이어갔다. 이 장면은 영웅의 마지막 모습을 가장 조용하게 풀어낸 순간이었다.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현장, 지휘자 최수열과 서울시립교향악단(사진=이강원)


이번 서울시향의 무대에서, 최수열은 <영웅의 생애> 오리지널 버전의 조용한 종결부를 구조적으로 설계하며 후반부의 해석에 일관성을 유지했고, 감정선에서도 절제된 해석을 보여줬다. 다만 연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집중력이 일시적으로 이탈한 순간들이 여러차례 나타났다는 점, 거친 색채 조절, 정교하지 못한 앙상블은 교향악축제를 단발성 이벤트로 소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다. 교향악축제는 단지 전국의 오케스트라가 한자리에 모이는 기념비적 행사가 아니라, 각 단체가 현재를 비춰보고 가능성과 방향성을 점검하는 거울 같은 무대다. 서울시향은 이번 무대에서 협주곡을 통한 오케스트라의 공생능력, 지휘자의 해석에 함께 반응하는 영민함을 보였지만 정기연주회에 비해 연주 밀도와 집중력 면에서는 표현의 정밀도가 일관되게 유지되지는 않았다. 교향악축제가 단발성 무대가 아닌 자기 점검의 기회라면, 그 한계와 과제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태도야말로 이 악단이 단순한 기술을 넘어 해석적 깊이를 어떻게 정립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글 이강원(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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