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교향악축제 수원시립교향악단 - 1
-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4월 18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19일

여백이 들리지 않았던 밤, 수원시향의 브람스
- 감정은 있었지만, 구조는 남지 않았다-
2025년 4월 4일, 수원시립교향악단은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무대에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제4번을 연주했다. 브람스의 서사와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이 프로그램 구성만으로도 공연은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협연자로 나선 2024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 바이올리니스트 차오원 뤄에게는 국내 주요 무대에서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첫 데뷔 무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오랜 시간 수원시향과 호흡을 맞춰온 최희준 지휘자 역시, 이번 무대를 통해 향후 오케스트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는 무대였다.
1부에서 차오원 뤄는 절제되고 정제된 해석으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풀어냈다. 1악장에서 그는 감정을 차분하게 눌러 담은 담백한 선율을 들려주었고, 특히 2주제를 연주할 때는 구조 속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는 연주로 눈길을 끌었다. 반면 수원시향은 협연자와의 호흡보다는 빠른 전개에 치중해 다소 급하게 연주를 이어갔다.
1악장 재현부의 두 번째 주제, F# 장조로 조성이 전환된 뒤 솔리스트가 이어받아 D 장조로 오케스트라가 화려하게 재등장하는 투티에서는, 지휘자의 동작보다 앞서 오케스트라가 급박하게 진입하는 모습이 감지됐다. 이처럼 조성 전환의 브릿지 구간마다 오케스트라가 조급하게 밀고 나가며 음악의 드라마적 요소가 명확히 드러나지 못했고, 긴장감도 희석되었다. 차오원 뤄는 끝까지 내면의 절제를 유지하며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유기적으로 반응하고자 했으며, 카덴차에 이르러서는 최희준 지휘자가 차오원 뤄의 템포에 맞춰 안정적인 지휘를 보여주었다. 차오원 뤄 또한 여백을 남겨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만, 그의 카덴차 연주에서는 아쉬움도 남았다. 빠른 음형이 지나갈 때마다 음이 뭉개지는 현상이 종종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2악장에서는 오보에 솔로와 바이올린 독주가 조화롭게 교차하며, 브람스가 설계한 내밀한 대화 구조가 설득력 있게 구현되었다. 그러나 구조적 긴장을 드러내야 할 전조 구간에서는 지휘자의 해석이 다소 아쉬웠다. 특히 F 장조로 마무리되는 악장에서 잠시 F 단조로 전조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지나치게 가볍게 처리되며, 브람스 특유의 긴장감과 설계미가 충분히 살아나지 못했다.
3악장에서는 ‘Allegro giocoso, ma non troppo vivace’ 라는 지시어에 충실한 절제된 보잉이 인상적이었다. 브람스가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과도한 독주를 염두에 두고 조율해 놓은 장치였지만, 이번 연주에서는 솔리스트보다 오케스트라가 더 높은 에너지와 빠른 템포로 솔로를 압도하는 양상이 펼쳐졌다. 도입부 이후 집시풍, 왈츠풍, 터키풍 등 다양한 질감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는 양측이 잘 대응했지만, 전반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축제적인 분위기와 솔리스트의 담담한 해석이 서로 다른 결을 만들어내며 호흡이 자주 어긋났고, 음악의 서사는 단절적으로 들렸다.
전체적으로 차오원 뤄는 곡을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안정적인 연주를 펼쳤다. 위대한 거장의 깊은 내공이나 감정이 넘실대는 보잉은 아니었지만, 브람스 협주곡의 본질을 이해하고 중심을 지키려는 성실한 연주였다. 반면 오케스트라는 지나치게 강하고 빠른 연주로 인해 브람스 특유의 유기적 흐름과 서사적 완급 조절을 구현하지 못했다.
2부의 브람스 교향곡 제4번 역시 1부와 마찬가지로 강한 에너지와 밀도를 강조한 연주였다. 1악장 ‘Allegro non troppo’는 앞서 연주한 브람스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과 유사한 템포이다. 그러나 이 곡만의 고유한 구조를 감안하더라도 이 악장은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빠르게 연주됐다. 이로 인해 현악기의 하행 3도 이후 이어지는 목관의 카논, 그리고 중간의 팡파르 모티브, 코다에서 응축된 긴장이 분출되는 클라이맥스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빠른 템포 속에 악기간의 응답과 상호작용은 평면적으로 들렸고, 특히 제1바이올린의 음색만이 두드러졌다. 코다 직전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싱코페이션 구간에서도 지휘자의 명확한 해석은 느껴지지 않았으며, 응축과 해소의 구조적 짜임새가 부재했다. 결국 1악장은 속도에 묻혀버린 인상이었다.
2악장은 무난하게 진행되었으며, 3악장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템포와 에너지가 외면적으로는 긍정적인 인상을 주었다. 브람스가 의도한 금관과 타악기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리듬의 강렬함이 분출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4악장의 파사칼리아 주제를 미리 암시하는 구간이 지나치게 흥분된 채 빠르게 처리되면서, 4악장으로의 구조적 연결감이 흐트러졌다. 정서적 기대감이 이완된 순간이었다.
가장 복잡하고 섬세한 4악장은 브람스의 구조적 미학이 응축된 파사칼리아 형식으로 구성되며, 하나의 주제 위에 30개의 변주가 층층이 쌓여야 한다. 그러나 수원시향은 여전히 흥분된 상태로 템포를 밀어붙였고, 결국 이 악장의 구조적 아름다움은 단순한 변주의 나열처럼 들리고 말았다. 12번째 변주에서의 플루트 솔로도 지나치게 빠른 템포로 인해 충분한 호흡을 확보하지 못한 듯했고, 프레이징은 급작스러운 멈춤으로 끊기며 유기성이 떨어졌다. 14번째 변주의 금관 코랄에서도 음정이 불안정하게 들렸다. 결국 정교하게 설계된 이 악장은 내러티브 없이 기능적으로만 흘러갔다.
결론적으로, 수원시향의 이번 무대는 강한 인상과 밀도 높은 사운드로 브람스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 신선하고 강렬한 경험을 제공했을 것이다. 특히 템포와 에너지 중심의 연주는 입문자들에게 직관적인 감흥을 전하며 대중적인 측면에서 의미 있는 접근이었다. 차오원 뤄 역시 곡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중심을 잃지 않는 절제된 해석으로,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인상적인 첫 무대를 선보였다.
그러나 브람스의 음악이 지닌 구조적 정교함과 내면의 호흡, 여백의 미학은 이번 연주에서 충분히 살아나지 못했다. 오케스트라는 전반적으로 빠르고 강한 연주를 지향하며 브람스가 쌓아올린 건축적 서사보다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단발적이고 표면적인 인상을 줄 수는 있었지만, 작품의 깊은 층위에 접근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대한민국 대표 오케스트라로서 수원시향이 브람스와 같은 고전 레퍼토리를 연주할 때, 더 섬세한 설계와 내면적 호흡에 대한 고찰이 병행된다면 그 깊이와 울림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번 공연은 그러한 가능성과 과제를 동시에 보여준 무대였다.
글 김민석(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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