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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교향악축제 전주시립교향악단

  • 작성자 사진: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한국클래식음악평론가협회
  • 6일 전
  • 2분 분량


서정적 시작, 진중한 끝으로 그린 여정

2025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전주시립교향악단과 피아니스트 아르세니 문


2025 교향악축제의 중반을 채운 전주시립교향악단의 공연은 전략적 선곡을 통해 시작과 끝이라는 극명한 대조를 표현하고자 한 의도가 돋보였다. 특히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 그의 젊은 날의 첫 협주곡이라면,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은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작과 마지막을 음악적으로 연결하는 섬세한 선곡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화려한 오프닝, 글라주노프가 이끈 서막

첫 무대인 글라주노프의 모음곡 <중세시대로부터> Op.79 중 ‘프렐류드’는 힘차게 터져 나온 금관악기의 웅장함과 경쾌하게 흩뿌려지는 현악의 선율을 통해 관객들을 공연의 세계로 매끄럽게 이끌었다. 연주의 도입부로서 충분히 화려하고 경쾌한 인트로였으며, 전주시향의 밝고 기민한 표현력이 빛났다.



쇼팽, 봄비처럼 부드러운 아쉬움

이어서 연주된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1번 e단조 Op.11’은 널리 알려진 곡인 만큼, 정석적 해석보다는 독창적 표현과 섬세한 하모니가 중요한 감상의 포인트가 된다. 이날 독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아르세니 문은 페루치오 부소니 국제 콩쿠르 64번째 우승자이자 2024년부터 내한공연을 통해 국내에서도 서서히 주목받고 있는 피아니스트로, 자신만의 부드럽고 유연한 레가토 터치로 드라마틱한 표현력을 보여주었고, 마치 산뜻하게 내리는 봄비 같은 청량한 서정성을 선사했다. 그러나 악보에서 요구하는 상승과 하강의 다이내믹한 대조, 포르테시모나 스타카토에서 트란퀼로로 이어지는 극적 전환은 다소 평탄하고 일관된 연주로 인해 극적인 표현이 덜 되었고, 특유의 레가토로 일관된 스타일은 자칫 가볍고 단조로운 인상으로 남기도 했다. 특히 2악장인 로망스(Romance)의 아름다운 서정적 멜로디에서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와 긴밀한 호흡을 이루지 못하고 마치 따라가는 듯한 위태로운 순간도 나타났다. 그러나 3악장 론도(Rondo)에 이르러 연주가 점차 안정을 되찾고, 피아노의 강렬한 터치와 오케스트라의 조화가 살아나면서 곡의 무게중심을 회복해 나갔다. 이는 아르세니 문의 개성적인 연주와 전주시향이 끝내 찾은 조화로운 지점이라 평가할 수 있으나, 처음부터 일관된 호흡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브루크너, 경외감을 일으킨 안정적 연주

후반부를 장식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 d단조’는 그 자체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비록 작곡가의 죽음으로 인해 3악장으로 끝난 미완성곡이지만, 인간이 신을 향해 품는 경외감과 내면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깊은 무게감을 품고 있다. 전주시향은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악장의 도입부부터 관악과 현악의 주고받음이 매우 안정적이고 탄탄했으며, 복잡한 화성 구조를 능숙하게 표현하여 설득력 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이어진 2악장의 강력한 스케르초(Scherzo)와 극적 대비가 요구되는 트리오(Trio)에서도 흔들림 없는 템포와 집중력으로 곡의 진중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특히 3악장의 아다지오(Adagio)는 전체 곡을 관통하는 상승의 흐름을 정리하고 마무리 짓는 듯한 명상적 깊이를 느끼게 했다. 관악기군의 주도로 이루어진 클라이맥스 부분에서의 안정감과 균형 잡힌 음색은 연주자들의 깊은 헌신과 준비의 완성도를 엿보게 했다.



아쉬움으로 남은 사유의 빈자리

하지만 이 곡이 지닌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전주시향과 지휘자의 명확한 개성과 해석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2악장에서 주제 간의 교차 및 대비가 명료한 서사적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다소 일률적으로 흘러간 부분이 있었으며, 지휘자의 해석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듣는 이에게 더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충분히 안정적인 연주였지만, 브루크너 음악이 요구하는 보다 철학적이고 내밀한 해석의 깊이가 더해졌다면 더욱 훌륭한 공연으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전주시향의 이번 연주는 전략적인 선곡과 안정된 연주를 바탕으로 음악적 즐거움을 충분히 선사하였다. 이번 무대를 계기로 전주시향이 앞으로 더 많은 성장을 이루어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깊이 있는 음악 세계를 펼쳐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글 조영환(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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